2017. 6. 24. 13:02



 유키온나는 외로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존재야. 남자가 말했다. 유우토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네, 그렇게 답하곤 웃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이었다. 투둑, 투둑, 눈이 창호지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봐, 저렇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면서 창호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잖나. 외로운 사람들이 저 소리를 듣고, 방문객이 왔다고 기대하고 싶어 만들어 낸 게 유키온나인 거지."

 "그렇구나... 처음 알았어.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남자는 찻잔을 들어 차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는, 유우토가 입은 하얀 기모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곧 그 위에 걸친 검은 하카마로 향했다. 남자는 요괴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피식하고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냈다.


 "그래. 어쨌든 산에서 유키온나가 나온단 소문은 자네 때문이었군. 나도 자네의 그 하카마만 없었으면 유키온나라고 착각했을지도 몰라."

 "아하하... 자주 들어, 유키온나 같다는 말... 이런 곳에서 사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웃는 남자 앞에서 유우토도 즐거운 얼굴로 소매를 정리했다. 흰 기모노 위에 입은 검은 하카마는 그의 유일무이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옷이었다. '춥지 않으십니까.' 그런 질문을 하고 나서, 곧 자신이 누구에게 그렇게 물었는지를 깨닫고 멋쩍어하던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고, 유우토는 남자 몰래 소리죽여 웃었다. 그 날 유우토는, 자기도 모르게 춥다고 대답했다. 추위를 느낄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자 그의 친구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그에게 걸쳐주었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입니다. 장난스레 유우토의 말에 맞춰주면서.


 "요괴를 안 믿는 것 같은데, 요괴에 대해 많이 알고 있네... 신기해."

 "많이 알기 때문에 믿지 않는 거지. 또 듣고 싶은 요괴 이야기가 있나?"

 "듣고 싶은 이야기... ..."


 남자의 물음에, 유우토는 생각에 잠긴 채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차가운 잔이 손 안에서 기분 좋은 냉기를 전해주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럼, 음... 텐구 이야기를... 듣고 싶어."

 "텐구... 텐구라."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남자는 곧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유우토는 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산의 요괴 텐구, 그건 요즘 유우토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텐구는 유성이야. 중국에서 흉조를 알리는 유성을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된 거지. 그 불꽃이 하늘을 나는 개나 여우처럼 보여 텐구(天狗)라고 불렀다고들 하네."

 "그래...? 흉조를... 조금 의외네..."

 "의외일 게 있나?"
 "아... ...음, 글쎄, 내 안에서 텐구는... 왠지... 정의로운 요괴라는 인상이... 강해서."
 "텐구를 산의 신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지역도 있긴 하지. 이 근처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신성한 산의 신... ...그렇네, 그건 좀 어울릴지도 몰라..."

 "자네는 꼭 텐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 ...후후.... 그렇게 들렸어...? 음, 멋지다고는... 생각해. 날개라든가..."


 이야기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창호지 너머로 바깥이 점점 밝아지면서 바람소리가 잦아들었고, 문을 때리는 눈도 점점 약해지는 듯하더니 이내 완전히 그쳤다. 문을 살짝 열고 바깥을 확인한 남자는, 지금이라면 산을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눈보라를 피하게 해줘서 고맙네. 자네가 아니면 얼어죽을 뻔 했군."


 동사를 피하게 해주었다는 말은 유우토의 정체를 안다면 우습게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유우토는 가만히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남자는 유우토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나야말로,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남자는 놀란 얼굴로 맞잡은 손을 보았다. 유우토는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조금 즐거운 듯한 얼굴로 손을 놓았다.



 "...꼭 유키온나처럼 차가운 손이지?"




*




 산을 온통 하얗게 뒤덮은 눈은 밤이 될 때까지 녹지 않은 채 쌓여있었다. 눈 위로 내린 달빛이 반사되어 밝은 밤이었다. 밖으로 나온 유우토는 평소와 같은 장소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느다랗게 뜬 초승달에, 웃을 때 휘어지는 흰 속눈썹을 떠올리면서.


 기다리던 손님이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달 위로 까만 그림자가 비췄을 때, 유우토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기쁜 듯 웃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날개를 펄럭이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곧 그림자는 땅으로 내려와 유우토의 앞에 착지했다.


 "좋은 새벽입니다, 유우토 님."


 이나리는 기품 있는 동작으로 인사해 보였다. 오늘도 깃털 하나하나 단정하게 정리된 까만 날개가 얌전히 접혔다. 유우토는 날개에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기다려 온 손님을 향해 웃었다.


 "안녕, 이나리... 기다리고 있었어."
 "늦어서 죄송하외다. 이런 곳에서 기다리시느라 춥지는 않으셨는지요."

 "후후... 조금 추웠으려나... 그래도 하카마 덕분에 괜찮았네..."


 유우토의 대답에 이나리가 웃었다. 눈보라가 치는 날은 유키온나가 가장 사랑하는 날씨였다. 이나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요괴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가벼운 농담을 나누고, 두 사람은 함께 걸어 유우토가 지내는 집으로 향했다.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숨은 작은 집은 약속 장소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았다.


 집에 들어온 유우토는 제일 먼저 찻잔 두 개와 주전자를 꺼내 작은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난방 기구가 없는 집은 바깥과 크게 다를 게 없이 추웠다. 몸을 데우기 위해서는 차 한 잔이 필요했다. 하지만 유우토는 뜨거운 물을 가까이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차를 끓이는 것은 이나리의 몫이었다. 그걸 유우토는 늘 미안하게 여겼지만, 이나리는 차를 우려내는 걸 좋아하니 오히려 즐겁다고 답했다. 전날 새벽에 남자가 찾아왔을 때처럼, 이나리의 앞의 찻잔에는 따뜻한 녹차가, 유우토 앞의 찻잔에는 찬 물이 담겼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

 "오야, 들으셨다는 건... 객이 다녀간 모양입니다."

 "응... 눈보라에 길 잃은 인간이 한 명... 왔거든."


 유우토의 입에서 나온 인간이라는 단어에, 이나리의 표정에 가벼운 긴장이 스쳐지나갔다. 유우토는 그 사실을 모른 채로 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잠시 목을 가다듬은 이나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유우토 님, 한 가지 외람된 질문을 용서해주시겠소이까."

 "응...? 물론, 상관 없어..."

 "혹여나... 음, 전과 같은 일을 하신 건... 아니겠지요."

 "아하하... 아니야, 걱정 마... ...음, 조금 장난을 치긴 했지만."

 "자, 장난이라 하심은..."


 전과 같은 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우토도 알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장난'이, 인간에게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이나리에게 배웠다. 유우토는 가만히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을 따라서, 서늘한 기운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기모노의 옷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유우토가 손을 가볍게 들어보이자 찬 바람이 이나리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는 조금 웃어보였다.


 "찬 손으로... 악수를 했을 뿐이야. 인간은 무사히 돌려보냈어..."

 

 코끝을 잠시 문지르던 이나리는, 그의 대답에 안도한 듯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러고는 곧 깊게 머리를 숙였다. 이나리에게 있어서는 몸 깊숙히 밴 자연스러운 예의였지만, 아직 그런 반응에 익숙하지 않은 유우토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눈을 꿈뻑였다.


 "대답해주셔 감사합니다. 큰 무례를 범했소이다."

 "아니야... ...그리고 네가... 그러라고 했는걸. 여전히 인간에게 다정하네, 넌..."

 "그들 역시 저희와 함께 공존해가야 할 존재이기에. 유우토 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나...? 나는, 글쎄... ...음, 잘 모르겠어..."


 유우토에게 있어 인간은 요괴보다 약하고, 자주 불행하며, 그렇기에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존재였다. 그는 이나리를 만나기 전에도, 그리고 만난 이후에도 이따금씩 인간을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기에 눈보라로 길을 잃게 만들고, 손을 잡아끌어, 온 몸이 얼어붙을 때까지 함께 있는 거라고. 


 그러나 이나리는 그것이 잘못된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 때 그녀의 표정은 이 이상 없을 만큼 단호했다. 그녀의 태도에 조금 놀란 유우토는 그 날 이후로 그런 류의 사랑에 대해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하는 말은 유우토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유우토의 대답에 이나리는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습니까, 그렇게 작게 말하고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에 놓인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금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괜찮으시다면,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 들려주시겠습니까."

 "아... 그렇네. 후후, 좋아... 요괴를 믿지 않는 사람이 해준 요괴 이야기... 재미있을 거야."


 들뜬 유우토의 웃음에, 이나리 역시 기대된다는 듯 웃었다. 추운 겨울날이었고, 유우토의 잔은 차가웠다. 녹차의 온기가 전해지기에도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왠지 유우토는, 얼음처럼 차가운 손 끝이 천천히 녹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




 하늘이 완전히 밝아지기 전에 이나리는 유우토의 집을 떠났다. 다음에 올 날을 약속하면서, 그녀는 까만 깃털 하나를 유우토에게 건넸다. 유우토가 이나리의 날개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알고 건넨 선물이었다. 지난 새벽은 이나리에게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유우토의 짐작이었지만.


 ㅡ 그렇소이까. 눈이 창호지에 부딪히는 소리를, 방문객이 왔다고 생각하며 만들어 낸 존재가 유키온나... ...

 ㅡ 재미있는 이야기지...? 어쩌면 정말로... 그런 바람 속에서 태어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ㅡ 핫핫, 예.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유우토는 남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유키온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말.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외로움에서 태어난 유우토가 외로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끊임 없이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끌고 싶도록,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ㅡ 저 역시도, 앞으로 창호지가 흔들릴 때마다 그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또 다시.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감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라고. 유우토는 엄지손가락으로 가만히, 손에 남은 까만 깃털을 만져보았다. 이나리를 만난 이후로 유우토는 자신이 요괴인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동시에 그 사실을 슬프게 느꼈다. 따뜻한 차 한 잔 내놓을 수 없는 차가운 손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만약에 이나리가 눈 오는 날마다 유키온나인 그를 떠올려 준다면. 자주가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이라도 그래준다면, 그것만으로... ...


 그 날 유우토는 툇마루에 나와 동이 틀 때까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벽 내내 떨어지는 유성에 대해 생각했다. 불타는 유성이라면 분명 유키온나의 몸을 흔적도 없이 녹여버리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한 줌의 물이 되는 순간에도 외롭지는 않을 테니까. 유우토는 잠시 웃었다. 그래도 분명, 그의 친구는 그런 식의 결말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녹지 않도록 가장 추운 곳까지 함께 날아가줄지도 모를 일이다. 유우토는 하카마로 몸을 감싼 채, 그 온기에 몸을 맡기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