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로그/커뮤

[ㅇㅇㅁㄹ] 사망로그 (150124)

2015. 3. 4. 04:29

 

 이걸로 된 거겠지.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밧줄이 타들어간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야마루는 몇 번이나 거듭 생각했다. 이게 가장 정답에 가까운 선택이다. 병은 순식간에 두 명에게 전염되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살인이 일어나면 치료제가 지급되고, 자살 역시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었다. 방에는 유서를 남겨두었다. 설령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것은 금방 밝혀질 것이다. 앞으로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누군가 죽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

 

 사실은 좀 더 빨리 이렇게 해야 했던 건 아닐까. 매 구역마다 두 명씩이나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었는데. 좀 더 빨리, '행동할 용기'가 필요했다. 이럴 때를 위해서 내일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처럼 살아온 걸 텐데. 의미 있는 삶들이 사라지기 전에, 제일 가벼운 목숨을 써야 했는데. 그랬는데...... 욕심을 부렸다. 세 번의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가만히 있었다. 행동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것도, 분명 하나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있는 동안, 약속을 많이 하고 말았다.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앞으로 한 번, 또 누군가가 희생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 깨달았다. 이번엔 네 차례구나. 할 수 있다면 지키고 싶었지만, 이번만은 기다릴 수 없었다. 누군가가 죽고, 길이 열릴 때까지.

 

 아야마루는 천천히 지금까지의 약속들을 되짚었다. 동생의 결혼식에 가겠다는 약속. 같이 음식점을 돌아다니자는 약속. 산책을 하자는 약속. 사과를 전해주겠다는 약속. 같이 살아서 나가자는 수많은 다짐들.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이 고양이를 키우자는 약속도.

 

 '그건 너도 거짓말이었겠지만.'

 

 그 모든 약속이, 저 나이프가 떨어짐과 동시에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이건 희생 같은 게 아니었다. 어리석고 제멋대로인 짓이었고, 동시에 무책임한 배신이었다. 용서는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봐, 타로.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였어.

 

 

 '……슬퍼해주려나.'

 

 

 매듭이 풀렸다.

 그래도 너만은, 마지막까지.

 

 

 

 

*

 

 

 

 

ㅡ검은색이니까……

ㅡ쿠로라고 하자.

ㅡ고지라 하자!

ㅡ…고지라라니, 뭔가 때려 부술 것 같은 이름이네.

ㅡ…쿠로는 너무 평범하잖아… 그럼 넌 아오마루 할래?

 

 

 

 내가 쿠로, 네가 고지라라고 지어서 고양이의 이름은 결국 고쿠로가 되었었는데. 어른들 몰래 매일 찾아가 돌보던 고양이는 그 때의 우리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 비록 결국에는 들켜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 고양이를 찾아갔다.

 

 어느 날 찾아갔을 때 고양이는 죽어있었다.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 추위에 얼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난도질해놓은 것이었다.

 

 타로가 오기 전에 급히 고양이를 숨겼다. 타로에게는 고양이가 사라졌다고, 아마 독립한 게 아닐까 하고 거짓말을 했다. 타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럼 어쩔 수 없지'하고 말했다. 그 날 우리는 고양이를 찾지 않았다. 분명 타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죽기 전에 문득 그 때가 떠올랐다. 우리가 함께 키우던 고양이의 죽음. 어쩌면 그건, 우리 둘은 같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늘이 내린 경고 같은 게 아니었을까. 앞으로 다가올 모든 불행들에 대한 예고였던 건 아닐까.

 

 꿈에서 깨고나니 주변은 조용했다. 수술대 위에 그는 혼자였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추위가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면서 모든 감각이 희미해진다. ......아. 혼자 죽는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었구나. 아야마루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왼손의 코인을 꽉 쥐었다.

 

 

 '……타로.'

 

 

 네가 있어서 나는.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계속 너한테 의지하고 있었어. 너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한테 그런 건 정말로 상관 없었어. 너는……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모든 이유는 다 핑계였다. 영화를 봤을 때, 그리고 그게 네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 안그래도 점점 지쳐가던 네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했을 때. 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끔찍한 처형들이 떠올랐고, 조바심이 났다.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타로. 그건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이니까. 견딜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이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거야.

 

 '미안…….'

 

 다시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다.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이제 두 번 다시 눈이 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쁜 꿈을 꾸진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마지막에 네가 그렇게 말해줬으니까.

 

 '……잘 있어.'

 

 

 꼭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줘.

 나중에 봐, 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