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출발점으로

2017. 11. 7. 07:09



 "용서, 해달라고…… 하면,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하면…… 코우타는 어떡할 거야?"


 코우타는 숨을 죽인 채, 레이야의 손이 자신의 이마를 토닥이는 걸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레이야의 손은 떨리고 있다. 그건 언젠가 레이야가 알려준, 그의 할머니의 위로법이었다. 위로라는 말 안에 모든 걸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미가 담긴 토닥임이었다. 코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레이야는 코우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그러다가 그는 결국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아니야.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어서 미안해."


 정말정말 바보 같은 건 나야. 레이야가 작게 말했다. 코우타는 오래도록 레이야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곱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건 깊은 슬픔이었다. 변하고 싶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더 나은 미래를 바랐다. 만났고, 기댔고, 노력했다. 그랬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끝없이 상처를 받아야 할까.


 "……왜 거기서 사과하십니까. 전 언제나 이기적으로 굴어주시길 바랐습니다."

 "……."

 "더 일찍 그래주셨다면, 좋았겠지만……."


 코우타의 말은 끝맺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그들은 가장 멋진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잠이 안 오는 새벽엔 같이 차를 마시고,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서로의 미래를 지켜볼 수 있는, 그런 자연스러운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완전히 서로를 믿고 기대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고, 그것만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제가 레이야 씨께 드린 말씀은, 그냥 투정일 뿐입니다. 알고…… 있어요. 말씀하시지 않았던 건 레이야 씨의 잘못이 아닙니다. 신뢰가 부족했던 건, 저희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제가 용서할 일도 아닙니다."


 재판이 있던 날의 아침에 두 사람은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미워하게 되는 거짓말과, 그렇지 않은 거짓말이 나눠져 있다는 이야기. 그 때 코우타가 떠올릴 수 있었던 전자의 거짓말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 미래를 완전히 빼앗고, 결국엔 벌을 받으러 떠나버리는 것.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코우타는 곧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누구 하나라도 제대로 미워할 수 있었는가. 우리의 머리에는 언제나 총구가 겨눠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상황에서 온전한 잘못을 따질 수 있는가. 그래서 그는 그저 푸딩을 한 입 먹으면서 말을 흐렸다. 하지만 사실은 굳이 그런 물음을 던지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미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짧은 동시에 긴 시간이었다. 언젠가 레이야가 했던 말처럼,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조심 건너도 결국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여기서 레이야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레이야 씨가 돌아오셔서. 결국엔 안심하고 있어요. 돌아온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아도 말입니다. ……저는 고작 그런 사람입니다. 불편하신 몸이라도, 되도록…… 오래 곁에 계셔주셨으면 좋겠고, 두고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은 역시 잔인한가요."

 

 이마를 어루만지는 차가운 손에 위로를 받는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코우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 그는 가늠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견뎌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기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쪽은 어느 쪽인지, 그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코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저는 레이야 씨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할 수 없어요. 코우타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걸터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레이야를 마주보았다. 레이야는 여전히 두려워하는 표정이다. 코우타 역시 두려웠다. 그래도 레이야가 해준 것처럼, 조심스레 레이야의 머리를 토닥였다. 따라하듯이 머리카락을 조금 쓸어넘겼다. 인형의 이마는 차가웠다. 망가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레이 레이야는 다시 살아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미운 게 아니라, ……그냥, 슬플 뿐입니다."


 그러다 손을 멈추고, 코우타는 조용히 레이야를 끌어안았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기에는 힘 없는 포옹이었다. 단지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여기까지 와도, 두 사람 모두 그저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필사적일 뿐이었다. 노력에, 노력에, 노력을 쌓아가면서.

 

 "약속…… 해주시겠습니까. 앞으로 저를 믿어주시겠다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을 걸더라도 유비키리겐만의 노래는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어긴다고 해서 만 번을 때리는 일도, 천 개의 바늘을 마시는 일도, 손가락을 자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아픔은 더 이상 바라지 않았다. 


 "……서로, 상처 주지 않도록…… 다시 노력하기로 말입니다."

 바라는 것은 신뢰뿐이었다. 여전히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이 더 이상 후회로 채워지지 않도록, 다시 손을 잡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