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로그/커뮤
[ㅇㅇㅁㄹ] zZ (150120)
웇
2015. 3. 14. 04:18
시야에 비치는 세상이 낮았다. 내려다본 손도 평소보다 한참 작았다. 고개를 들자 우비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비도 오지 않는데 우비는 무언가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바닥에 쓰러져있는 누군가에게.
아, 다시 이 날로 돌아왔구나.
열 세살이 된 카미시로가 조용히 생각했다. 이미 여러번 본 꿈이었다. ......처음에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날 하루를 전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수많은 밤을 이 날의 꿈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날은 내가, 어느 날은 타로가,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동생이, 선생님이, 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우비를 입은 채 눈 앞에 나타났다. 잊길 바랄수록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다가, 마침내 인생의 한 가운데에 박힌 채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식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핸드폰이 있었다. 꺼내들고 손에 쥐었다. 모든 것이 생생하다. 어떤 숫자를 눌러야하는지도, 알고 있다. 천천히 기억 속의 숫자를 누른다. 1, 1, 그리고...... 0.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어느 샌가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화면 위에 떠오른 숫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린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열 한 번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그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남자가 손을 뻗었다.
......마지막까지 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
"......"
눈을 뜨자 천장이 보인다. 불은 켜진 채였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핸드폰 대신 라이터가 잡혔다. 이미 핸드폰은 빼앗긴 후다. 시간은 흘렀고, 타임머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가는 그런 꿈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였다. 방의 조명 빛 사이로 우비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당신을 원망하고 싶었는데.'
그 문장은 거기서 끝이 났다. 원망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 날과 당신은 이미 내 삶의 일부고,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줬으니까.
당신이 가르쳐준 것들. 예를 들면 삶은 아무 이유 없이, 어느날 갑자기, 순식간에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불행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그만큼 더 허무해질 뿐이라는 것. 신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아니, 오히려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가장 좋은 타이밍을 찾고있다는 것. 불행은 가지고 있던 행복의 제곱만큼 찾아오니까, 늘 0인 채로 살면 괴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왔으니까요.'
카미시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삶은 0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고통도 슬픔도 없었고, 내일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믿었다. 가끔, 타로와 시시한 장난을 칠 때나, 누군가와 함께 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새로운 약속들을 할 때마다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바뀌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그 대신 그는 메모장을 펼쳤다. 그리고 차례 차례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사해야 할 것. 비밀번호. 창고. 절망병을 고치는 방법...... 지키기로 했던, 약속들. 그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살아있었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카미시로는 적은 메모를 다시 읽고 메모장을 덮었다. 오전 세 시가 조금 넘은 새벽.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 다시 이 날로 돌아왔구나.
열 세살이 된 카미시로가 조용히 생각했다. 이미 여러번 본 꿈이었다. ......처음에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날 하루를 전부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수많은 밤을 이 날의 꿈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날은 내가, 어느 날은 타로가,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동생이, 선생님이, 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우비를 입은 채 눈 앞에 나타났다. 잊길 바랄수록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지다가, 마침내 인생의 한 가운데에 박힌 채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식으로 되살아나곤 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핸드폰이 있었다. 꺼내들고 손에 쥐었다. 모든 것이 생생하다. 어떤 숫자를 눌러야하는지도, 알고 있다. 천천히 기억 속의 숫자를 누른다. 1, 1, 그리고...... 0.
통화 버튼 위에 손가락을 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어느 샌가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진다. 화면 위에 떠오른 숫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린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 열 한 번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그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남자가 손을 뻗었다.
......마지막까지 통화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
"......"
눈을 뜨자 천장이 보인다. 불은 켜진 채였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핸드폰 대신 라이터가 잡혔다. 이미 핸드폰은 빼앗긴 후다. 시간은 흘렀고, 타임머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있었다.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가는 그런 꿈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 꿈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였다. 방의 조명 빛 사이로 우비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당신을 원망하고 싶었는데.'
그 문장은 거기서 끝이 났다. 원망하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 날과 당신은 이미 내 삶의 일부고,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줬으니까.
당신이 가르쳐준 것들. 예를 들면 삶은 아무 이유 없이, 어느날 갑자기, 순식간에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불행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그만큼 더 허무해질 뿐이라는 것. 신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아니, 오히려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가장 좋은 타이밍을 찾고있다는 것. 불행은 가지고 있던 행복의 제곱만큼 찾아오니까, 늘 0인 채로 살면 괴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왔으니까요.'
카미시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고, 속이 메슥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삶은 0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래서 고통도 슬픔도 없었고, 내일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 믿었다. 가끔, 타로와 시시한 장난을 칠 때나, 누군가와 함께 나가자는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새로운 약속들을 할 때마다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바뀌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그 대신 그는 메모장을 펼쳤다. 그리고 차례 차례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사해야 할 것. 비밀번호. 창고. 절망병을 고치는 방법...... 지키기로 했던, 약속들. 그에게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살아있었고,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카미시로는 적은 메모를 다시 읽고 메모장을 덮었다. 오전 세 시가 조금 넘은 새벽.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