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8. 12:16



 "안녕~ 근처에 온 김에 잠깐 들렀어."

 "헤이싱 씨."


 문이 열리자 미지근한 바람이 들어왔다. 그와 함께 나타난 것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헤이싱은 저번에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었다. 코우타는 친구의 방문에 반가운 표정으로 웃었다.


 "어서 오십시오.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음… 고맙지만 아니.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뭐라도 만들어 볼까 하던 참인데 말입니다."

 "하하. 너무 그렇게 아쉬운 표정 짓지 마."


 잠깐 소파에 앉았다 갈 생각도 없는지, 헤이싱은 현관에서 더 깊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종이 봉투가 하나 들려 있었다. 코우타의 시선이 봉투에 머무르자, 헤이싱은 봉투를 가볍게 흔들어보이고는 코우타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자, 선물. 운명의 포춘 쿠키야. 저번에 받은 에그타르트에 대한 보답이고."
 "포춘 쿠키였군요.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됩니까?"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많이 있다고."

 "으하하… 그건 저번 삶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한텐 똑같이 이번 삶이잖아. 뭐… 이것저것 바뀌긴 했지만."


 헤이싱은 자주 모습을 감췄다. 잠시 일본에 머무르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방을 비웠고, 한참 동안 소식이 없다가도 태연한 얼굴로 다시 나타나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일본에 없을 때 헤이싱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코우타는 잘 알지 못했다. 가끔은 물어보았지만 이렇다 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숨기는 게 능숙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어쨌든 용건은 그것뿐이야. 좋은 조언이 나오면 좋겠네. 행복이 찾아옵니다~ 같은 거 말이야."

 "……."

 "이번 생은 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 행복해져 봐, 코우타."


 가벼운 손 인사와 함께 헤이싱은 떠나려는 듯 발을 돌렸다. 코우타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를 붙잡지 않았다. 헤이싱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ㅡ 또는 돌아오지 않을지. 다만 배웅의 인사를 하기 전에, 코우타는 작게 중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물어보셨지요. 행복하냐고 말입니다. ……제 행복은 헤이싱 씨께 제법 큰 의미를 갖는 모양입니다."


 헤이싱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첫 만남, 이라는 건 코우타의 이번 삶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였다. 아직 어린 코우타와 헤이싱이 우연히 만났을 때, 헤이싱은 제일 먼저 그렇게 물었다. 행복하냐고. 대답을 들은 그는 코우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다행이네,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웃었다.


 "……그리고 넌 그 때 행복하다고 답했지. 어때. 지금도 행복해?"

 

 코우타는 잠시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올려둔 헤이싱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붕대는 감겨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무사함에 안도하는 삶은 행복한 삶인가. 아니면 여전히 슬픔에 묶여 있는 삶일까. 코우타는 아주 먼 옛날을 떠올렸다. 이어지는 삶을 믿기에, 의심 없이 미래의 행복을 바랄 수 있었던. 무지하기 때문에 행복했던 매니저 코우타를 말이다. 어떤 사건은 삶에 줄을 긋는 것처럼, 그 이전의 자신을 타인이나 다름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삶의 행복에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했다. 모든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우타가 찾아낸 행복의 형태는 제법 확실했다. 봉투에 가볍게 손을 얹자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웅웅거리는 냉장고의 소음이나,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 틈새로 들리는 바람 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헤이싱이 있다.  수많은 타인과 평화로운 일상이 있었고, 조금 더 확실히 보이는 내일이 있었다. 그러니 대답을 망설이지는 않았다.


 "예, 행복합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지만요."

 "~… 그래. 다행이네."

 "헤이싱 씨는 행복하신가요."


 그 질문에 헤이싱은 고개를 돌려 코우타를 바라보았다. 의식하고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 앞에 놓인 것처럼. 그 반응에 코우타도 의외인 것처럼 헤이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말을 보태는 대신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헤이싱은 잠시 생각했고, 평소보다 조금 끊어지는 말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만족해."

 "……제 행복을 물으시길래 이미 행복 정도는 손에 넣으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솔직하고 서툰 대답에, 코우타는 농담조로 말하며 곤란한 듯이 웃었다. 그리고 만족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부족함이 없다는 건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언제나 욕심이었다. 그러나 코우타는,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든 그렇게 하기를 선택했다. 남들 역시 그러길 바랐고, 그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오래도록 그의 일이었다. 그는 잠시동안 상상했다. 행복을 손에 쥔 친구의 모습을 말이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이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헤이싱 씨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지랖이 넓네. 노력은 해볼게."

 "하하… 예, 응원할 테니까요."


 친구로서. 코우타는 짧게 덧붙였다. 헤이싱은 잠깐동안 코우타를 바라보았고, 곧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추운 날이 전부 지나간 봄의 중반이었다. 감기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건강에 유의하라는 말을 뺀 인사는 짧았다.


 "너도, 앞으로도 잘 해봐. 안녕, 코우타."

 "예. 노력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헤이싱 씨. 다음에 또 오십시오."


 문이 닫히고, 코우타는 잠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헤이싱을 보게 될 날은 내일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몇 년이 지난 후일지도 모른다. 코우타는 종이 봉투에서 포춘 쿠키 하나를 꺼내 열어보았다. 안에서 나온 쪽지에는 영어로 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코우타는 종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일 수 있는 조언이었다. 슬픈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문장이거나, 또는 누군가의 말처럼 행복을 바라는 문장이거나. 코우타는 종이를 접어 손에 꼭 쥐었다. 어느 쪽이든 노력할 것이다. 행복을 거머쥐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