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로그/커뮤

[ㅇㅇㅁㄹ] ㄴㅇ님 빵빵빵

2015. 3. 1. 05:42

 동생이 울고 있었다. 책상에는 텅 빈 공책이 펼쳐져 있었고, 거실에서 어머니가 기도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창 밖의 매미 울음 소리가 두 사람이 내는 소리 사이에 섞인다. 텁텁하게 데워진 공기에 숨이 막혔다.

 그곳에서, 그 좁은 집 안에서, 아야마루는 혼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내쉬는 조용한 숨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들에 지워졌다. 묵직한 공기에 머릿속의 생각들이 느리게 움직였다. 그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몰래, 모든 소리가 멎길 바랐다. 아주 조용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더위도 울음소리도 기도도 전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 그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생의 어깨를 건드렸다.


 ……도와줄까?


 울음 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동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움을 원하는 눈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간절하게. 아야마루가 가까이 다가가자 동생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동생 대신 자리에 앉아, 연필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반, 성, 문, 공책의 윗쪽에 그렇게 적었다. 그 글자들에 시선이 고정된다.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의 첫 일이었다.





*





 ㅡ……다녀왔습니다.


 인사와 함께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밖이나 다를 것 없이 집 안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오히려 더 추운 것 같기도 했다. 싸늘하게 식은 집 안에서, 어머니는 오늘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라는 인사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야마루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거실을 지나, 손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과 함께 쓰는 좁은 방에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밖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겠지. 가능한 한 늦게 돌아오기 위해서.

 책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공책을 펼쳐놓는다. 공책 맨 윗쪽에 반성문, 그렇게 적었다.

 그 옆에 동생의 이름을 적고, 한 자 한 자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동생의 삐뚤빼뚤한 글씨를 흉내내는 것도 이제는 어렵지 않았다. 히라가나 さ를 ち로 잘못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는 오늘 친구와 싸웠습니다. 그렇게 적고, 그 다음 문장부터는 동생에게 들은 대로 자세한 이야기를 추가해나갔다. 친구의 이름, 싸우게 된 이유, 그 때의 기분. 그의 기억에 동생의 담임 선생님은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동정에 호소할 수 있을만한 내용도 조금 적어넣었다. 마지막에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지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아야마루는 조용히 연필을 내려놓았다. 딱 공책 한 장 정도의 분량. 성의 없어 보이지 않으면서, 초등학생의 의욕으로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길이. 이 이상 쓰는 것은 부자연스러워 보이겠지. 할 수만 있다면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조금 아쉬운 기분마저 들었다. 써놓은 반성문을 읽고, 다시 읽었다.



 그에게는 이상한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사죄의 재능, 용서 받는 재능이었다. 그가 적은 반성문을 동생이 가져갔을 때 선생님이 용서해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다시 써오라는 호통도, 경멸의 눈빛도 없이, 동생은 조용히 용서 받았다. 오히려 그 후로 선생님의 태도가 묘하게 부드러워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형제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생겨났고, 동생의 반성문은 형의 몫이 되었다.

 아야마루 본인에게 있어서도 사과를 하는 것은 편한 일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그 말을 적을 때면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 속에 있던 아주 무거운 덩어리를 조금이나마 잘라 꺼내놓은 기분이었다. 그는 계속 계속 사과하고 싶었다. 비록 그가 직접 저지른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는 타인의 삶을 자기 삶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위치까지 끌어올리거나, 또는 반대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낮추는 것을 잘했으니까. 그래서 대신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었다.

 잘못을 받아들이며 사과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알기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그래서 그는 반성문을 쓰는 시간을 좋아했다. 다 써진 반성문을 보고 조금 안심한 듯한 동생의 표정도 좋아했다.



 거실에서 여전히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사과를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용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면, 어머니처럼 비참해진다는 것을 그는 배웠다. 비록 '비참하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로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도 마음 속에 아주아주 무거운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매일의 기도로 그것을 잘라내려고 하고있다는 것. 그러나 아무리 잘라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 그녀는 아마 오래오래 그 거대한 덩어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 그것이 아야마루가 이해한 비참함의 뜻이자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덩어리를 물려받았다. 어머니의 바람이 담긴 이름과, 그 이름에 걸맞는 재능과 함께.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타고난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또 그쪽의 길은 이미 그의 동생이 걷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다.

'…….'


 아야마루는 공책을 덮었다. 어머니는 내일도 기도를 할 것이다. 동생은 다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리고 아야마루 역시 계속 반성문을 쓸 것이었다. 끝이 있을까. 우리가 그 무거운 덩어리를 버리고 가벼워질 수 있는 순간이 올까. 그것은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없는 절망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언젠가는 올 것이었다. 짐을 버리고 홀가분해질 수 있는 날이. 그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