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로그/커뮤

[ㅇㅇㅁㄹ] 지금이나 (150128)

2015. 3. 14. 04:21

 

 

 '……그 땐 그런 바람이라도 가질 수 있었는데.'



 이제 잠들 수도 없게 되어버렸네.

 잠이 없는 새벽은 무자비하게도 길었다. 졸음이나 배고픔 같은 감각은 없다고 해도, 지금껏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을 할 수 없게 되는 건 생각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사실을 실감할 때마다 아야마루는 천천히 걸었다. 1구역부터 마지막으로 열린 5구역까지, 아주 오랫동안.

 모든 게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타임 리밋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때가 되면 이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날 것이다. 해피 엔딩은 없겠지만 베스트 엔딩은 있길 바랐다.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 남겨지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게 되겠지. 너나, 나 역시도.

 아야마루는 계속 걸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결국에는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걸었다.




*



 그러다 걸음을 멈춘 곳은 커다란 창고 앞이었다.


 언젠가 한 번 조사했던 곳. 그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글쎄. 한 두 마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문에 손을 대고 힘을 싣자 그대로 손이 문을 통과했다. 유령처럼 스르륵 창고 안으로 스며든다. 홀로그램인데도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듯한 창고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그 어둠이 낯설다가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네가 여기서 죽었구나. 이런 추운 곳에서.


 '바보 같이.'

 피해자는 스즈키 타로와 카미시로 아야마루, 사인은 두 사람 모두 자살. 다시 생각해봐도 우스운 결말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엇갈린 자살이라니. 우리는 그런 비극 같은 건 원하지 않았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다시 생각했을 땐 우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저 허무하고 화가 났다. 그런 선택을 한 친구에게도, 우리를 마지막까지 가만히 두지 않는 신에게도.

 '나는 죽어도…… 너는 죽으면 안되는 거였어.'

 이제야 정답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타로 곁을 떠날 각오도, 목숨을 버릴 각오도. 가질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모든 게 그의 죽음과 함께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네가 죽어선 안 됐어. 네 인생은, 이런 데서 끝나면 안 되는 거였어. 난 아직 너한테 사과도 못했는데 벌써 죽으면 어떡해. 네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것, 그거 하나만 바라고 있었는데.

 '속죄를 해야되는 건 언제나 나였는데.'


 알아? 타로.

 처음부터 네 인생을 망친 건 나였어. 너한테서 가족을 빼앗은 것도. 널 비난 속으로 몰아넣은 것도. 네가 네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믿게 된 것도 전부. 모든 게 내 잘못이었어. 너는 아무 잘못도 없었어.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야. 하필이면 나랑 친해진 게, 네 불행이었어.



 '너한테 직접 말하고, 사과해야 되는데.'

 끝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하고 싶었던 말들은 하나도 전하지 못했다. 각오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너한테 미움 받는 건 좀 무서운가봐.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아진 게 없구나, 나는. 

 '……미안해, 타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모든 것이 바보 같았다. 허무했고, 슬펐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두 사람은 죽었다. 가능성은 끝이 났다. 어렸을 때 잠들기 전에 간절히 바라던 것들이 다시 텅 빈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헛된 바람들이 끝도 없이 흘러나와 고통스러웠다. 이루어질 수 없다면 차라리 모든 걸 놓고 잠들고 싶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