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7. 02:32





 카즈하의 특기는 저글링이었다. 다양한 묘기 중에서도 그녀는 무언가를 던졌다가 받아내는 묘기에 가장 자신이 있었다. 저 높이 던져올려진 공을, 떨어지기 전에 받아내고, 다시 위로 올려보내는 일. 그것의 반복. 언제부턴가 그녀는 욕심을 부렸다. 공이 아닌 사람 역시도 붙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떨어지는 순간, 곁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슬픈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줄곧 꾸어왔던 꿈이었다.


 그러나 그 바람에서 비유법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람은, 공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각자의 몫만큼 삶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오만했던 것이다. 카즈하는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언젠가는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동시에 그녀는 경솔했다. 적어도 그 날, 집어든 편지를 열어보고,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줄 정도로는 생각이 짧았다.



 그냥, 나를 믿게 해줘.

 믿게...... 도와줘.



 언젠가 그가 그렇게 말했던 날. 카즈하는 처음으로 유진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본 기분이 들었다. 장난스러운 말투와 읽기 어려운 표정 뒤에 숨겨왔던 무언가를. 그녀는 그것이 기뻤고, 또 슬펐다. 그의 손을 잡고 싶었다. 해야할 말은 정해져있었다. 믿게 해줄게. 그런 말을 입에 올리면서 그녀는 약속했다.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그 결과는 보이는대로였다. 카즈하는 유진을 잡아주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함께 추락하지조차 못했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 유진. 카즈하는 언젠가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와 나는 과연 우리라는 말 안에 묶일 수 있는 관계였을까.


 













 눈을 떴을 때, 카즈하는 거울 앞에 있었다.


 

 긴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몽롱했던 의식이 맑아질 때까지, 그녀는 한참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곳에 덩그러니 버려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도서관에 있었던 것 같은데. 도서관. 그곳에, 누군가와, 그러니까, 유진과 함께.


 눈을 깜빡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문득 깨달았다. 죽었구나, 나. 죽었다. 그 말은 아주 짧았다. 마치 텅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현실감이 없어서였을까. 어쩌면 혼자 조용히 깨어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 덕분일지도 몰랐다.


 하나 다음에 둘, 둘 다음에 셋, 셋 다음에는. 누군가 꺼냈던 말을 그녀는 떠올렸다. 셋 다음에는 하나로 돌아왔다. 살해당한 것은 카즈하 한 명뿐이었다. 그녀는 아프지 않게 죽었다. 어차피 누군가 죽어야만 했다면, 그게 그녀여서 슬플 이유는 있는가. 카즈하는 답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떠오르는 미련을 하나하나 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엄마 아빠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괜찮아.


 이제 하루와 다신 만날 수 없다.

 ......괜찮아.


 이제 저글링도 할 수 없겠지.

 .........괜찮아.




 할 수 없게 된 일은 끝없이 많았다. 그 뒤에 붙여야 할 괜찮다는 말도 끝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밑바닥에 있었다. 이곳에선 더 무너질 방법도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괜찮아지도록 도와준 것들을 다시 떠올렸다. 그들이 들려주던 이야기. 같이 여행을 떠나자던 약속. 따뜻한 코코아와 홍차. 서로에게 해주던 포옹. 함께 만들던 요리. 카즈하, 하고 불러주던 목소리들. 아니면, 아니면. 도서관에서 담요를 덮고 함께 지샜던 밤.


 그 밤이 네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더라도, 내게는 친구와 함께 견뎌낸 밤이었어. 유진. 너는 그 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편지를 건네기 전까지, 나는 잠깐이라도 네 친구였을까. 그 모든 질문의 답이 궁금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보다 더 깊은 곳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어떤 대답이 돌아와도 슬퍼질 것이란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카즈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몸을 웅크렸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