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상담도 코코아 별사랑 대축제 ~제 1탄~
별이 빛난다.
거울 앞에 앉은 요이치와 세렐이 보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머그잔을 손에 꼭 쥔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여웠다. 장난을 치러 모인 꼬마들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18도의 에어컨 냉방과, 야광별이 만들어낸 가짜 홋카이도. 코코아의 온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한 모금. 단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이제 산 사람의 흉내에 지나지 않았다. 가짜와 진짜의 차이에 의미를 둔다면, 너희는 진짜. 나는 가짜가 되어버리겠지. 그러나 두 사람은 이곳에 있었다. 두 사람이 거울 앞에 앉아있는 이유는, 거울 너머의 나를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이다.
가짜라도 함께라면 진짜처럼 가치 있고 아름다울 거라고, 그가 말했다.
거울은 싫더라도 당신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조금 웃었다. 기뻐서 나온 웃음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너희만큼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함께 홋카이도로 떠나주었다. 그것만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의미는 충분했다.
우리는 코코아를 마셨고, 가끔 스노우볼을 흔들었고. 상담실 천장에 펼쳐진 밤하늘을 보기도 했으며, 사소한 이야기도 나눴다. 조용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잠시 이야기가 끊어지고 다 같이 코코아를 홀짝이던 중에, 문득 요이치가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ㅡ 아, 여기......
그가 바닥에 놓여있던 스노우볼을 집어들었다. 여기, 하고 가리킨 것은, 몸체에 붙은 작은 태엽 손잡이. 틀어봐도 될까.....? 그가 조심스레 묻자, 세렐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끼릭, 끼릭. 요이치가 태엽을 감는다. 손을 놓자 태엽이 돌아가며 맑은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이 곡은.
ㅡ 이건... 베토벤의 월광곡이네요.
ㅡ ...밝은 곡은... 아니네...
미안... 하고, 안색이 나빠진 요이치가 작게 말했다. 곡을 멈추고 싶은지 태엽을 만지작거렸지만, 무심하게도 곡은 멈추지 않았다. 태엽을 감아놓은 이상 다 풀릴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렐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ㅡ 요이치... 당신 잘못도 아니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말아요.
ㅡ 그래도... 틀어보겠다고 한 건 나니까...
ㅡ ...이 곡도 6분쯤부터는 밝은 곡조로 바뀌어요. 오르골이니 그렇게 길진 않겠지만, 곡 전체를 압축해놓았다면 중간에 바뀔지도 모르죠.
그게 세렐 나름의 위로라는 것을 물론 요이치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하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새삼 두 사람의 대화를 앞에서 보고 있는 게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둘에게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시선을 알아차린 두 사람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봤을 땐 모른 척 고개를 돌렸지만. 흠흠. 목을 가다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ㅡ 그러고보니 홋카이도에는 오르골 박물관이 있대. 이거 거기서 사온 거 아닐까?
ㅡ ...그런가...? 그럴지도... ...그렇게 생각할까...
ㅡ 응! 그리고.....
말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아마도 해선 안 될 말일 것 같았다. 이미 이 자리만 해도 충분히 욕심 부린 건데. 아아. 음. 그치만. ...그래도. 딱, 한 번만.
ㅡ 다음에는 거기서 더 밝은 곡이 나오는 오르골 사자.
자연스럽게. 최대한 걸리지 않게 꺼내본 다음이라는 말이었지만, 두 사람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틀렸다는 걸 알았다. 잠깐의 침묵. 아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적절한 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나쁜 짓을 하려다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가능한 한 평소처럼 보이도록 웃었다.
ㅡ 어쩌면 밖에서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음... 으음, 손거울에도 나타날 수 있게 한번 연습해볼게!
마지막은 좀 무리수였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월광곡이 침묵의 상담실에 배경 음악을 깔아주었다. 여전히 비장하긴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고마워요, 베토벤. 나는 마음속으로 인사했다. 그러나 곧 오르골 소리 위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ㅡ ...손거울에서... ...볼 수 있게 되면.
작은 목소리였지만,
ㅡ 방에서도 만날 수 있겠고... 더 가까워지겠네... ......기뻐......
그의 말은 확실히 들렸다.
요이치의 대답을 들은 세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거울이 싫다고 했었다. 이 대화 주제는, 깊고 깊게 생각하는 그녀에겐 고통스러울 것이다.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손이 머그잔을 꼭 잡았다가, 놓았다가. 말을 고르는 듯 한참동안 망설이던 그녀는, 작게 말했다.
ㅡ ......그래요. 가능하다면 좋겠네요.
세렐은 고개를 숙인 채 머그잔 속의 코코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보지못했겠지만. ......나는 웃었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기분은 아니었다. 기뻤고, 슬펐고, 미안했고, 고마웠고. 웃었지만 잘못하면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울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참아냈다. 들키진 않았다. ......아마도.
ㅡ ......그럼, 홋카이도 여행 계획... 다시 짜볼까...?
대화를 다시 이어준 것은 요이치의 제안이었다. 한 번 둘이서 이야기했다가, 나의 죽음으로 인해 중단되어버렸던 여행 계획. 이 모임도 진짜 홋카이도에 갈 수 없게 되어서 요이치가 제안해준 일이었는데. 죽기 전에 말했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었다.
ㅡ 그럴까? 헤헤...... 앗. 세렐, 홋카이도에 대해선 얼마나 알아?
ㅡ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 밖에는... 잘 알진 못하네요.
ㅡ 홋카이도엔 곰이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아... 세렐한테도 호루라기... 줄까...?
ㅡ ......실제로 곰과 조우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요이치와 나는 세렐에게, 전에 둘이서 짰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홋카이도에서 같이 코코아를 마시기로 한 것. 이글루 모양의 카페와, 같이 만들 얼음집과, 따끈한 온천. 클라우드도 올지 모른다고 했으니, 네 명이 되면 무엇을 할지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 다음에는, 새로 추가된 오르골 박물관이라는 선택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길게 이어진 화제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어떤 노래가 나오는 오르골을 팔고 있을지였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는 꼭 있을 거라는 말에는,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정말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그러나 지금까지도, 우리의 약속은 언제나 위태로웠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여기 있고, 너희도 거기에 있고. 우리는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 그러니 아직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용서해줬으면 좋겠어.
ㅡ 우리, 거기 가서도 꼭 같이 별 보자.
나는 스노우볼을 들어올려 한 번 흔들었다. 동그란 구 안에서 하얀 눈이 내렸다. 이곳은 홋카이도. 셋이 함께 온 첫번째 홋카이도 여행. 두번째는 갈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머리 위에선 여전히 야광별이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기적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