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즈카 유우, 열 두살
집에서 나가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났다.
스무살의 유우는 어두운 방 안에 있다. TV 화면의 불빛만이 그를 비췄다. 그의 곁에는 인형과 스케치북, 그리고 크레파스가 있었다. 이런 걸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커버렸다고, 유우는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어린 아이를 위한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을 때마다 유우는 기쁜 척 활짝 웃었다. 그러면 엄마와 아빠는 안심한 듯,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웃었다.
성인이 되어도 유우는 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생일 케이크에는 초를 꽂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생일을 축하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 모든 흐름은 자연스러웠고,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벽에 기대 서서 키를 쟀을 때. 머리 위의 선이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았을 때. 키가 조금 컸다가, 내가 발돋움했을 뿐이란 걸 알았을 때. 그 모든 때 엄마 아빠가 지었던 표정을 유우는 기억한다. 124cm의 유우는 부끄러운 존재다. 그들이 유우의 나이를 잊고 싶어하는 것도, 유우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유우는 알고있다. 엄마와 아빠가 유우를 죽이지 않는 건, 그들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딱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부족해서였다. 평범한 사람이고 싶은 그들에게 살인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하나의 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우를 계속 집에 숨겨둘 수 없다는 건 두 사람도 알고있었다. 언젠가는 유우를 죽일 각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죽이고, 어딘가에 묻어버린다면, 그것보다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아무도 유우를 찾을 수 없다. 유우는 오로지 부모의 수치와 죄책감 속에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의 삶도, 생각도, 감정도,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TV 속에서 이름 모를 연예인들이 웃는다. 저 사람들은 유우를 구해주지 않는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유우의 편은 없다. 갑자기, 그리고 서서히 분노가 찾아왔다.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도, 키가 자라지 않아서 느낀 죄책감도.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모든 것이 뒤집어지며 분노가 되었다. 이 변화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을까. 유우는 알지 못한다.
나는 살해당하지 않을 거야.
당신들이 날 지워버리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 날 유우는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엄마 아빠를 죽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부모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 목을 졸랐고, 칼로 찔렀다. 유우가 부모에게 소리친다. 내 존재를 지우고 싶었어? 내가 그렇게 부끄럽고 이상해 보여? 아니 나는 정상이야. 정상이였어. 키가 자라지 않았을 뿐 나는 평범했는데. 이제 정말로 이상해졌어. 난 당신들이 너무 미워. 다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상상 속의 엄마 아빠는 놀란 얼굴이었다. 유우가 계속해서 목을 조르자 그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후련했다.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그 날 유우는 정말로 미쳐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 속이었다. 유우는 작고 약했다. 토끼가 개를 물어 죽일 수 없듯이, 유우는 엄마 아빠를 죽일 수 없다. 분노는 오직 머리 속에서만 허락되는 감정이었다.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의 유우는 오늘도 TV 속에서 웃고 떠드는 연예인을 보고있다. 방송이 끝나면 유우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것이다. 즐거운 놀이공원과 웃고 있는 사람들과 솜사탕을. 그리고 순진한 어린 아이가 부모의 칭찬을 바랄 때처럼, 엄마 아빠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그 공책을 놓아둘 것이다. 그들이 유우의 나이를 잊고 안심할 수 있도록. 그게 유우가 살아남는 법이었다.
*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
유우는 루리를 내려다본다. 상처가 나는 걸 그렇게 무서워하던 꼬마는 죽었다. 이 손으로 죽였다. 친구라고, 여길 나가면 솜사탕을 사주겠다고 말한지 몇 시간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루리를 죽이고 온실로 돌아갔을 때, 나무에 매달린 아카리는 죽어있었다. 아카리의 등을 밀었을 때 손에 느껴지던 무게가 아직도 생생했다. 하룻밤동안 사람을 두 명이나 죽였다.
그래,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죽이고 들키지 않으면 나갈 수 있다. 그런 웃기지도 않는 룰과 함께 이곳에 갇힌 날부터. 겨우 도망쳐나왔던 그 작은 집에 다시 갇힌 것 같은 절망 속에서, 유우는 사람을 죽일 각오를 했다. 엄마 아빠를 죽이는 상상을 했던 것처럼, 스물 다섯명을 한 명 한 명 머릿속에서 살해했다. 아니, 살해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무리 상상해 봐도 유우가 살아남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손을 뻗으면 유우의 머리에 손이 닿는다. 유우를 죽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평생에 걸쳐 배운 살아남는 법을 유우는 잊지 않았다. 유우는 열 두살이 되었다. 철 없고, 쓸 데 없이 자신감 넘치고, 알기 쉬운 꼬마. 누구나 쉽게 좋아할 수 있을만한 어린 아이가 되려고 했다. 친구니까. 어린애니까. 어떤 이유로든, 유우를 살해 후보에서 제외하도록. 유우는 여러 번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마음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지금 한 약속을 잊지 마. 이 약속을,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돼. 차마 나를 죽일 수 없어질 때까지.
송곳에 긁힌 손바닥이 아파왔다. 아카리에게는 결국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거짓말하면 바늘 천 개 먹기. 그렇게 말한 건 아카리였는데, 그는 약속을 깨고 바늘도 먹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모든 대화와 약속이 소꿉 장난처럼 느껴져서 조금 웃었다. 너도 처음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어?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체가 된 아카리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이 오고, 시체가 발견되고, 또 다시 밤이 찾아왔다. 유우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마셨다. 처음으로 살인이 일어났던 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그 날 유우는 유리에게 데운 우유를 건넸고, 다음 날 유리는 처형당했다. 우유를 마시며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내일은 재판이야.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음의 대답은 내일이 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반쯤은 이미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언제나, 언젠가는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상상 속의 유우는 결국엔 늘 그렇게 죽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의 유우는 아카리를 죽였다. 죄 없는 목격자였던 루리도 죽였다. 유우는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다. 내일 처참하게 처형 당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살아남아서 숨을 쉬는 게 기뻤다.
이제 살인자가 된 유우를 아무도 잊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눈 앞에서 보란 듯이 열 두살 유우를 죽이는 상상을 한다. 잘 봐. 이게 진짜 나야. 늘 너희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기대되어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스물 아홉살의 이누즈카 유우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