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멍한 머리가 멋대로 상상했다. 같이 게임을 하고, 만화를 읽고, 은우가 좋아하는 꽃 차를 마시는 상상. 그건 온세상이 먹먹해질 만큼 슬펐다. 하지만 그건 처음부터 없는 가능성이었다. 아쉬워하기에는 너무 먼 미래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건 비참한 일이야. 너도, 그걸 알잖아.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어. 너희랑 같이, 나가서... ...하지만, 하지만 난, 밖에, 못 나가. 그러니까... 너희 집에도 못 가. ...여길 무사히 나가도, 난... 난 다시 너희들을 못 만나, 못 만나겠어, 만나봤자... 한 마디도 못 할 거야. 얼굴도 못 볼 거야... ... ...그래서,"
"......"
"... ...그래서 사람을 죽였어. 너희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어서... 너희랑 헤어지기 싫어서. 여기 영원히 있고 싶어서..."
은우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다. 언젠가 2층 침대 위에서 그랬듯이. 머리가 뜨거웠다. 이상해.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무서워. 더 이상 말하면 안 되는데. 말하면, 전부, 밑바닥까지 전부 다. 들켜버릴 텐데.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잖아, 너도, 내가... 내가 얼마나...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다 봤잖아. ...난... ...그냥, 애매하게, 내가 한 짓만으로, 미움 받고 싶었어. 내 밑바닥까지... 보이고 싶지 않았어. ...나한테 무슨 변명을 하라는 거야... 난, 변명할 말 같은 거, 없어... ...말해서 더 실망시키기 싫었단 말이야..."
이제 사라지지도 못하는데. 뼈가 부러져도, 자해를 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버리는데. 나는 알아. 나는, 너희가 좋아할 구석이 없는 사람이야. 네가 미워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속이 울렁거린다. 토할 것 같아. 세상이 뒤집힌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한심해. 구질구질하고. 그게 네 룸메이트였고, 친구였던, 나야. 너는,
"...이런 나라도 좋아할 수 있어...?"
대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