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문 앞에 이런 게 놓여있지 뭡니까."
코우타는 짠, 하고 한 권의 동화책을 꺼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슈슈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저희를 위해 누군가 선물해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한참 이르지만, 산타라든가요. 슈슈가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코우타는 그렇게 이어갔다.
"괜찮다면 지금 거실에 갈까요? 제가 읽어드릴 테니 말입니다!"
"……응. 슈슈, 갈래."
슈슈와 코우타는 거실로 향했고, 그곳에 있는 소파에 함께 앉았다. 그리고 사이 좋게 하나의 담요를 나눠 덮었다. 온기를 느끼는 건 코우타뿐이었겠지만, 슈슈는 그걸 거부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이 조금 슬픈 기색을 띄고 있는 것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었다.
"자, 그럼……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시를, 코우타는 조금 힘을 준 목소리로 읽어내려갔다. 앨리스, 유치한 이야기를 들으렴. 상냥한 손을 건네서, 어릴 적 꿈에 뒤죽박죽인 이야기를 놓아 두렴……. 슈슈는 끌어안을 인형이 없어 담요를 꼭 그러쥐고 있었다. 시가 끝나고, 마침내 앨리스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앨리스는 강가에서 언니의 옆에 누워있다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한 두 번 정도 들여다봤지만,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림도 대화도 없는 책은 아무 쓸모도 없잖아.' 앨리스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
…
"다음 순간에, 앨리스는 토끼의 뒤를 쫓아 구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앨리스가 아주 깊은 구멍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코우타는 가만히 슈슈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인형의 손은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건 아주, 아주 슬픈 일이었지만, 코우타는 갑자기 몸이 커진 앨리스처럼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슈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하룻밤 사이에 훌쩍 자라나버린 것처럼. 이제 복도에 누워 장난을 치지도 않았고, 활짝 웃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녀가 가끔씩 작은 웃음을 흘릴 때마다, 코우타는 조금 안심한 듯이 마주 웃었다.
그러는 사이, 동화 속 앨리스는 '나를 마셔요'라고 적힌 병을 발견했다. 똑똑한 앨리스는 병에 독이라고 적혀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앨리스는 살짝 맛을 봤습니다. 그건 정말 맛있어서…… 아. 체리 타르트와 커스터드, 파인애플, 칠면조 구이, 땅콩 사탕, 그리고 버터를 바른 따뜻한 토스트를 합쳐 놓은 맛이 났다…… 고 되어 있군요."
"……슈슈는, 여러 번 상상해봤지만…… 무슨 맛일지 잘 모르겠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맛일까요, 대체."
"그치만 왠지, 맛있을 것 같아……."
"……예. 분명 그럴 겁니다!"
병을 비운 앨리스의 모험은 계속되었다. 케이크를 먹기도 하고, 눈물의 샘을 헤엄치기도 하고. 그녀의 길고 긴 여행은 슈슈와 코우타의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슈슈는 저번과 달리 졸려하지 않았다. 아마 동화를 다 읽을 때까지,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동화를 다 읽을 때까지도, 그녀는 잠들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샌가 두 사람의, 그리고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여행은 다섯 번째 장까지 와 있었다. 물담배를 문 애벌레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애벌레가 물었습니다. '넌 누구지?' 앨리스는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땐 최소한 내가 누군진 알았던 것 같은데, 너무 여러 번 바뀌어서 모르겠어요.' 애벌레는, '그게 무슨 뜻이야?'하고 물으면서, '네가 누군지 설명해 봐!'하고 다그쳤습니다. 앨리스는……."
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보다시피 저는 제가 아닌걸요.
코우타가 한참을 그 문장 앞에서 멈추어 있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슈슈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루하루……?"
"……아닙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으하하, 죄송합니다."
그는 사과의 의미를 담아, 조심스레 슈슈의 손등을 다독였다. 아니면 반대로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코우타는 말할 수 없었다. 슈슈가, 앨리스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는 감히 그녀의 기분을 짐작할 수 없었다. 괜찮기를 바란다는 말도 아직은 꺼낼 수 없었다. 코우타는 그 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구멍 속으로 뛰어들 수 없었으니까.
"동화를 다 읽으면 뭘 하고 놀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새벽이든, 낮이든, 언제든 말입니다."
전 언제든 곁에 있어드릴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코우타는 슈슈를 향해 웃어보이고, 손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다시, 최대한 담담하게 다음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밤이 깊고 새벽이 찾아와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앨리스가 모험을 마치고, 사랑하는 언니의 곁에서 다시 눈을 뜰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