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고 반짝반짝한 괴물이 앨리스를 쫓아갔다. 앨리스가 나쁜 아이라서, 혼내주려고. 앨리스는 그런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이제 오블리주니까 나쁜 아이 아닌데,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그건 그녀가 오래 전부터 쫓기는 꿈을 꿔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오블리주가 되지 못한 그녀에게는 가치가 없다고 가르쳐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언젠가 코우타가 앨리스를, 마치 자신의 딸을 보는 것처럼 기쁜 표정으로 바라봤을 때, 앨리스는 무언가 낯선 것을 보듯이 코우타를 가만히 마주보았다. 코우타는 결국 그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왠지 슬픈 기분을 느꼈다. 코우타의 눈에 앨리스는 마냥 어렸다. 그저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처럼 느껴졌다.
ㅡ 코우타 님.
앨리스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코우타보다 훨씬 의젓하며, 각오를 마친 얼굴로.
ㅡ 믿고 있으니까 앨리스는 상의하지 못 한 거야.
그녀는 천칭 위에 올라섰다. 투표가 끝났다. 떨어진다. 코우타는 영원히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라는 말을 영원히 나열해도 될 만큼 영원히. 앨리스가 천칭 위로 올라가는 순간과, 떨어지는 순간과, 그리고…….
캐시가 죽고 돌아온 건 식단표였다. 영양가 없는 식사가 하루 세 번씩 제공되었다. 코우타는 살기 위해서 식사를 했다. 입맛이 없어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씹어 삼킬 수 있었다. 그건 코우타에게 있어선 당연한 일이었다. 재판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개인실에 들어가 모든 걸 토해냈다. 코우타가 먹은 건 앨리스 블랑과 요키사키 캐시였다. 모든 삶은 희생 위에 서있다는 걸 안다. 모든 고기는 가축을 죽여서 가공된 것이며, 모든 야채는 식물을 뜯어내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죽음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세상 어딘가에서 모든 순간에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문장으로 접하는 것과, 눈 앞에서 죽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다르듯이. 앨리스와 캐시의 죽음은 어떤 단어나 한 마디 말 안에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희생이라는 말도 둘의 죽음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코우타에게는 그랬다.
만약에 앨리스와 캐시가 모든 걸 털어놓았다면, 코우타는 그들을 말렸을 것이다. 분명 그게 앨리스가 말한 신뢰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런 신뢰를 기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코우타는 식단표를 찢었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종이를 찢는 순간에 내일의 식사 메뉴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내일 하루, 그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을 테니까. 추모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른 모든 일을 놓은 채, 오로지 두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한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