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자네가 해줬다면 훨씬 기뻤겠지."
음악 소리가 멈춘 무도회장은 조용했다. 피와 뇌수가 진득하게 섞인 웅덩이 속에서, 라엘 케셰트는 눈을 뜨고 있었다. 웨일은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라엘의 눈을 보았다. 너무 뚫어지게 보면 닳을 거라고 했던가. 그 말이 사실인지 시험해보려는 것처럼 그의 시선은 한참동안 라엘에게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도 불만스러운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시시한 흐름에 결국 고개를 돌렸다. 죽은 사람이 말이 없는 건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바뀌지 않을 일 앞에서 기적을 바랄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조용히 파도가 치고 있었다. 웨일은 자주 폭풍우 속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혼자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심정을 느꼈다. 결코 조용할 리 없는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은 언제나 고요했다. 그게 분노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던 건 언제의 일이었던가. 웨일은 라엘의 눈에서 분노를 읽었다. 죽은 후에도 감기지 못한 눈에서 미련을 찾았다. 죽은 자 곁에 남는 것은 결국 산 자의 억지스러운 해석뿐이다. 그러니 그는 조용히 물었다.
"자네도 억울한가?"
"……."
"화가 나던가, 갑자기 맞이하게 된 죽음은. 자네도…….."
질문이 끊기고 대답은 없었다. 욕조 가득 담긴 바닷물은 라엘 케셰트가 준비해둔 것이 아니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준비한 모든 편의가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욕조에 담겨 있을 더러운 물이 배수구를 통해 남김 없이 흘러나가길 바란다. 친절을 가장한 저열함을 짓밟고 싶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웃을 수 있는 모든 더러운 존재를……. 웨일은 조용히 라엘 케셰트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범인을 찾아낼 것을 약속하겠네."
자네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속삭임을 끝맺음과 함께 분노가 웨일의 등을 떠밀었다. 파도에 휩쓸리듯 웨일은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간다. 망설이지 않는 걸음으로, 더 깊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