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보하는 사람보단 이기적인 사람이, 삶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보다는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좋네. 보기에 안심이 되거든."
웨일은 체니의 태도에서 이렇다 할 부자연스러움을 잡아내지 못했다. 개운하다는 말에 걸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막 위협에서 벗어나 안전을 만끽하는 자에게 굳이 지적할 정도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웨일에게는 그럴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웨일은 다만 잠시동안, 체니가 베일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했다. 검은 베일은 체니의 얼굴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다. 그 어떤 추측에도 답을 내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다시 체니 줄리엣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만난 지 두 주가 채 되지 않은 사람들,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 발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탈출구. 신뢰한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뜻이며, 이곳에서 그 위험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 게 현명할 것이다. 당장 체니 줄리엣과 잔을 나누고 있는 정체 모를 인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가 체니 줄리엣에게 건넬 유리잔에 독약을 발라놓지 않았을 거란 확신을,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의심만으로 버티는 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니, 곧 이 안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원하지. 자네의 안목으로 충분히 의심한 후에 말이야."
웨일은 체니에게서 다시 병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가 병과 함께 가져온 두 개의 유리잔이 나란히 놓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웨일은 잔에 독을 바르지 않았다. 또한 이곳에서 그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겐 더 이상 무언가를 희생시켜가며 지킬 만큼 가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윤기 있는 갈색의 양주가 독이 묻지 않은 잔에 담겼다. 웨일은 잔 하나를 체니 앞으로 밀어두고, 나머지 한 잔을 손에 들었다. 긴장감 없는 태도로 잔을 흔든 그가 짧게 웃었다.
"얼마 전에 가루다 군과도 함께 한 잔 마셨네. 건배사는 그가 바라는 일로 하기로 해서…… 결국 '우리의 무사 귀가를 위하여'였던가."
양주가 독한 냄새와 함께 찰랑였다. 신뢰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취기 뿐이라는 듯이. 웨일은 술에 잘 취하는 체질이 아니었다. 생각을 완전히 포기할 만큼 술 기운에 이성을 내주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제정신으로, 이 끔찍한 상황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죽음이나 또는 다른 것들을 남몰래 두려워하며.
"그러니 이번에도 자네가 가장 바라는 일을 위하여 건배하도록 하지. 어떤가, 줄리엣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