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용사는 마왕을 물리치는 꿈을 말하며 각오를 다지고, 어떤 상인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꿈을 말하며 쑥스러워 했다. 이토 역시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쿄는 울었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쿄가 울었다.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이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빛났다. 하나의 눈에 담기기에는 너무 많은 색. 한 사람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많은 불행. 이토는 그의 프로필에 적혀있던 문장들을 기억해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양친, 개에게 물려죽은 동생, 이빨 자국이 나있는 포스터, 고작 열아홉살의 천재 피아니스트... 그 모든 선명한 불행의 주인공이 눈 앞에 있었다. 만약 어떤 한 사람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짊어지게 만드는 신이 있다면, 분명 그 신은 영영 인간을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


 "행복했던 기억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생과 저를 위해 작곡해주신 곡이, ...있는데. 그걸... 가장 뛰어난 자리에서. 모두가 인정해주는 순간에. ...연주하고 싶어요."


 이토는 행복했던 시절의 쿄를 상상했다. 여동생의 손을 잡은 어린 쿄와,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멋진 곡을 작곡하는 부모님. 그런 가족의 옆에서라면 쿄는 지금보다 조금 더 활짝 웃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눈은 머리카락에 가려지는 일 없이 똑바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쩌면 그의 손은 상처 하나 없이 건반을 누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장면은 그저 이토의 상상일 뿐이지만, 쿄의 기억 속에는 그런 행복의 진짜 모습이 남아있을 것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어쩌면, 그의 삶 속 유일한 희망으로서.


 "그게 다예요. ...그걸 위해 살고 있다니 우습죠...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예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작은 목소리는 연주회를 끝마치는 인삿말 같았다. 쿄는 이토의 눈 앞에 있다. 그의 키는 이토보다 조금 작아서, 사실은 이토보다 조금 아래에 서있었다. 하지만 이토는 내내 자신이 쿄를 올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쿄는 무대 위에. 이토는 관객석에. 쿄의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이토는 그저 말 없이 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하고 말을 꺼내는 순간은, 한참 후에야 찾아왔다.


 "우습지 않아..."


 언젠가 했던 게임 속 주인공은 말했다. 나는 편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건 영영 이루지 못 할 꿈이지. 그 말을 봤을 때 이토는 슬퍼서, 너무 슬퍼서, 주인공을 껴안고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슬픈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바로 눈 앞에 쿄가 있었기 때문에. 이토는 아주 조심스럽게 쿄의 손을 잡았다.


 오로지 끝에만 존재하는 희망이 있지. 그건 정말로 슬퍼. 죽은 채로 사는 것, 죽지 못해서 사는 것, 불행에 짓눌린 채로 사는 것, 그 모든 삶은, 네 삶은, 정말로...


 "응... 잘 들었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있었다. 이토는 쿄의 앞에서 운다. 쿄의 연주회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는 수많은 관객들처럼. 하지만 쿄의 눈물과 관객들의 눈물이 결코 같은 무게가 될 수 없듯이, 이 자리에서 우는 두 사람의 무게 역시 영영 같아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둘은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로 인해 울었고, 어쩌면 그건 함께라는 말 안에 묶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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