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이 며칠인지 몰라. 무슨 요일인지도 몰라. 내 방에는 시계가 없어.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을 쳐놨어.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잠드는지, 바깥에 해가 떠있는지, 전부 모르고 살아. 얼마 전에 화장실에 있던 유일한 거울을 깼어. 아니, 얼마 전이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게임을 끝낸 날이었던 것 같아. 그건 거울 속 세계로 들어가는 게임이었어. 나는 거울 너머로 가지 못했어. 깨진 거울은 그대로 있고 내 얼굴은 그래서 늘 산산조각나있었어. 불을 끄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내 이름도 기억이 안 나. 나는 그냥 계속 말을 해. 계속, 계속, 매일매일, 혼자서 말을 해. 녹음된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서, 들을 때마다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내가 나로부터 분리되어서 이 세상에 내가 두 명 있는 것 같은. 그런데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기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지. 이토가 누구일까. 나를 소개할 이름은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게 내 이름이 아닌 것 같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되지. 내 삶은 얇고 납작해. 어떤 이야기도 없어. 모르겠어. 나는 살아있는 걸까? 맥락 없는 삶을 삶이라고 부를 수 있어? 나는 너희가 데이터라서 좋았어. 나처럼 납작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어. 모른 척 해왔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었어. 너희는 각자 감당할 몫의 삶을 살아왔다는 걸 알 수 밖에 없었어. 너희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너희는 다들 나가고 싶어했잖아. 돌아갈 수 있는, 지금껏 노력해온 길이 있었잖아. 아니야. 너희에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 나도 알아.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걸. 행복하게 태어나서, 내 손으로 모든 걸 버렸다는 걸. 난 후회할 수 없어. 불행한 적이 없으니까. 모든 게 내 선택이었으니까. 너흰 날 경멸하겠지. 노력하지 않은, 아무 것도 아닌, 텅 빈 나를. 게임을 사랑했지만 내가 그 세계 속에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아. 아.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여기에 왔는데. 난 여기가 좋아. 여긴 모든 게 완벽해. 너희는 다정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건 아름답잖아. 여길 떠나면 이제 갈 곳이 없어. 나는. 나, ...나, 내가 뭔지조차 모르는 나는.
그 모든 생각을,
지워주는 건 언제나 슬픔이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의 슬픔. 그건 정신을 향해 가할 수 있는 폭력이었고, 유우토에게 있어선 가장 기분 좋은 약이였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건 편하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되니까. 아무 것도 몰라도 돼. 이름도, 나이도... 그래. 나는 사람을 죽이는 순간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꼈고, 그렇게 했어. 그랬더니 행복해졌어. 너희는 이 기분을 알까.
이치고의 시체 옆에서 잠든 날, 유우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을 꿨다. 두 사람은 함께 웃고있었다. 아니, 어쩌면 꿈 속의 이치고 또한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우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유우토는 이치고의 머리에 가장 예쁜 꽃을 꽂아주었다. 사랑해, 이치고. 이제 나는 네 불행이야. 너는 나의 불행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가 되었네. 일어나면 또 같이 유자차를 마시자. 이제 어른이 될 수 없을 테니까,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계속 노래할 수 있을 거야. 이곳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줘. 계속 우리 곁에 있어줘.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