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名

카테고리 없음 2017. 3. 29. 12:14



 "...이름이 없는 제가 무슨 이름을 붙여줄 수 있겠습니까."


 감정이 없는 로봇을 상상한다. 한 번, 방독면 너머의 눈을 들여다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게 사람의 눈일지, 아니면 로봇의 렌즈일지 궁금해서. 얼굴을 가렸던 방독면은 너무나도 쉽게 벗겨졌다. 고작 명령 한 번에 드러난 얼굴은,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게임기를 손에 쥔 카시스 프라페의 얼굴을 본다. 렌즈가 아닌 눈은, 로봇이 아닌 사람의 것이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음, 그건..."


 왠지, 슬퍼보여서. 그래서 이토는 잠깐, 아주 잠깐 말을 잃었다. 


 "그건, 명령에만 따르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 같은걸..."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던 프로필. 그곳에 적혀있던 명령에 대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태도가 고쳐지길 바라고 그를 이곳에 보냈다는, 그의 주인. 그의 국가. 그들은 자신의 개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아마도 몰랐겠지. 악역은 흔히 희망에 대해선 무지하니까. 카시스 프라페는 그들의 기대를 깨트릴 것이다. 조금씩 보이는 변화는, 그가 오로지 주인에게만 복종하는 개가 아닌, 평범한 한 사람에 가까워져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꼭, 이름이 없는 게 슬픈 것처럼 보여..."


 작은 게임기의 화면 속에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었다. 이름을 불러주세요. 메세지창은 음성 인식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저 강아지는 또 다른 이름 없는 개가 되어버릴 텐데. 넌 그게 슬픈 걸 알아. 이미, 알고 있어.


 "...그럼, 이 강아지보다 먼저, 네 이름부터...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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