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명의 프로필이 있다. 무대는 가상현실. 그곳에는 말하는 꽃과 동화 같은 숲이 있었다. 가끔은 축제가 열렸고, 현실에는 없는 동물이 움직였다. 그 안에서 등장 인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로를 죽이고 또 죽여야 했다. 살인자는 재판을 받고, 연출된 마지막 무대 위에 서고. 그리고 마침내 홀로그램이 되어 되돌아온다. 한 마디로 표현해서, 그건 게임 같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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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앞에 영상이 지나간다. 교통 사고가 난 버스. 인질극. 굴러떨어진 작은 신발. 개를 죽이는 아케타가와 쿄. 팔락거리며 넘어가는 일기장과, 그 안에 담긴 하나마치 이치고의 삶. 그 모든 게 게임의 회상씬 같다는 생각을, 유우토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결국엔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비밀을 폭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지만 유우토는 알고 있었다. 죽음이야말로 그 이전의 삶에 끔찍할 만큼의 무게를 더한다는 걸. 이미 끝난 삶의 무게를 실감하는 건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게임에서조차 그랬다. 추모는 영원히 끝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날에 유우토는, 그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방법을 하나 만들어냈다. 불행에는 작품으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포장된 불행은 삼키기 좋았다. 덕분에 유우토는 불행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유우토는 포장지가 벗겨진 날것의 불행을 본다. 그건 연출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현실이었고, 동시에 누군가의 삶이었다. 그걸 실감하는 순간, 순식간에 그를 지켜주던 모든 벽이 무너져내렸다. 유우토는 두려워졌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불행이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의 몫이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불어날 예정이었다. 나는 이걸 삼킬 수 없어. 견뎌낼 수 없어. 이제와서 제정신으로 돌아올 순 없잖아. 쿄도, 오델라도 이미 죽었는걸. 이치고도 죽었어. 내가 이치고를 죽였어. 이치고를, 살아있는 사람을, 나는... ... 유우토는 살아있는, 살아있었던, 한 명의 인간인 하나마치 이치고의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하는 순간 유우토의 삶에 살인자가 가져야 할 온전한 무게가 돌아왔다. 그러자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날 새벽, 유우토는 미치지 않기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결국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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