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우비를 입고 있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남자의 우비는 흠뻑 젖어있었다. 기분 나쁘고 축축한 색. 손에는 무언가 묵직해보이는 둔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잘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에 쓰러진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ㅡ……왜…… ……짓을……

 
 바닥에 널브러져있던 무언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의 말을 하고있었다. 그 사실이 왠지 현실감이 없어서, 아야마루는 그저 망연히 그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ㅡ그건 네 이름이…… ……라서.

 우비를 입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갑작스레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쿵, 하고 심장이 묵직하게 뛰었다. 그 다음에는 쿵, 쿵, 쿵, 쿵... 조금씩 박동이 빨라졌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차라리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아야마루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그를 보면서, '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하고 유난히 여러번 물어보던 사람.



 타로의 아버지.




 ……타로의 아버지가 우비를 입고 서있다. 비도 오지 않는데, 우비는 흠뻑 젖어있다. 까맣게도 빨갛게도 보이는 이상한 색. 그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한다. 

ㅡ…… …… ……


 주문이라도 읊듯이, 그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무 의미 없는 소리 같기도 했고, 사람의 이름을 쭉 이어놓은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들어도, 계속 귀를 기울여 봐도. 익숙한 목소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야마루는 조용히 뒷걸음질쳤다.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멀어지다가 마침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 없이 뛰기 시작했다.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어디로든 좋으니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 아닐까 싶을만큼 뛰었다. 목도 머리도 다리도 아팠다. 한참을 달리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조금씩 느려지게 했다.


 신고, 해야할까.


 방금 본 게 어떤 상황이든간에,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람이 위급한 상태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건이든 사고든 누군가에게 알려야 했다. 경찰에게 연락하는 게 가장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로 타로의 아버지라면,'

 타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머니와 둘이 남겨지는 걸까. 아버지가 없는 생활이 견디지 못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있던 존재가 없어지는 건 무게가 다르겠지. 슬퍼할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내가 타로한테서 아버지를 빼앗는 게 된다면, 그건 싫은데. 하지만…… 만약 정말로 살인마라면. 타로도 위험한 게 아닐까.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 또다른 생각이 나타나 그것을 집어삼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어졌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응, 만약 잘못 본 거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야.

 아야마루는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쥐었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한 밤중이었다.

 잠에서 깬 아야마루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우비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피 냄새가 방 안에 남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식은 땀이 기분 나쁘게 이마에 맺혀있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생생하고 불쾌한 꿈이었다. 충전기에 꽂아놓은 채인 핸드폰을 확인했다. 새벽 두시 반. 부재중전화도, 메일도 없음.

 그 날로부터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타로를 만나지 못한지는, 일주일이 지났다. 타로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자주 함께 놀던 놀이터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현실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타로의 아버지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 슬픈 일이었지만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타로의 어머니까지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신문과 뉴스는 매일 일본의 보니 앤 클라이드에 대해 보도했다. 죄책감 한 점 보이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그들을 향해 시도 때도 없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쏟아지고 남은 화살은…… 모두, 타로를 향했다.

 범죄자 부부의 어린 아들. 남겨진 유일한 사람. 이 아이는 커서 어떻게 될까? 부모처럼 되는 게 아닐까? 부모의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아이를 제대로 키워왔을 리 없으니까. 범죄자는 태어날 때부터 범죄자가 될 피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타로를 예비 범죄자 취급해왔다. 견디다 못 한 타로는 모습을 감췄다.



"……."


 아야마루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화면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자판을 꾹꾹 누르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메일 한 통을 보내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수신자는 스즈키 타로. '새벽에 갑자기 미안. 자다 깼는데 생각 나서 보내. 악몽 꾸지 말고 잘 자.' 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당연하지만 오지 않았다. 새벽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아야마루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올 거라고 믿고있었다. 믿고 싶었다.

 '나쁜 일이 일어난 건…… 아닐 테니까.'

 뻔뻔하게 계속 연락을 할 수 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타로가, 안 좋은 선택을 했을까봐.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고, 그것만이라도. 무사하다는 것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메일을 보내다보면, 질려서라도 타로가 한 번쯤은 답해주지 않을까. 그러면 안심할 수 있을 텐데.


 이제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고 해도 좋으니까, 딱 한 번만.


 아야마루는 핸드폰을 다시 머리맡에 놓았다. 연락이 오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도록 소리도 진동도 최대로 해놓은 채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게, 잘못된 선택도, 목격했던 것도, 전부 다 없던 일이 된다면. 다시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함께 놀던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로,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헛된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이 들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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